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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임오보(1702년)서문
壬午譜序 趙氏族譜譜趙氏之族也趙氏貫淳昌而爲望族者其來久矣有諱璋仕麗朝爲檢校大將軍寔爲我鼻祖四世而至諱元吉恭讓朝以定策勳封玉川府院君玉川即淳昌舊號也與鄭夢周偰長壽齊名自後子孫綿廷冠冕不絶而其散在京鄉者頗多焉趙氏各有家譜而無印行者咸以是爲歉也幸今左水使爾重甫杖鉞南維晝錦還鄉大會族人而謂曰族之不可無者譜也趙氏之無譜我輩之責也今我幸承天寵來鎭此閫可以爲譜矣諸君盍贊吾志僉曰諾於是宗黨之同志者慨然遍吿族人不旬月各派世系咸集不佞與同宗數人實主張之序昭穆定位次而譜己成矣水閫乃割捀以助之遂鋟于梓印出摠若干卷嗚呼派分於源枝別於幹千派萬枝其麗不億古人所謂其初一人之身分而至於兄弟其初兄弟之身分而至於塗人者此也族而無譜則何以推源族而無譜則何以尋幹敦敍九族者非譜不可也尊敬祖宗者非譜不可也斯譜之作惡可己乎噫後之觀吾譜者孝悌之心可以油然而生矣後世子孫繼此而作者庶有感於斯譜云爾 崇禎紀元後玄黙敦牂仲夏上澣 肅宗二十八年(一七○二) 後孫 維元 敬書 于仙川精舍 임오보서(壬午譜序) 趙氏 族譜는 겨레의 世系와 派別을 記錄한 것이다. 趙氏가 淳昌으로 貫源을 두고 望 族이 되여 온지 이미 오래이다. 諱 璋(자)께서 麗朝에 벼슬하셔서 檢校門下侍中을 하셨는데 진실로 우리의 시조가 되신다. 四世에 이르러 諱 元(자)吉(자)가 恭讓王때 王을 받들어 세운 功으로서 玉川府院君에 封해졌다. 그 당시에 鄭夢周 偰長壽와 名望이 같으셨다. 이로부터 子孫이 많이 번져 내려 오 면서 벼슬이 끊이지 않고 京鄉에 많이 흩어져 살았다. 우리 趙氏가 각기 家譜는 있으나 刊行한 일은 없기 때문에 모두 유감으로 여겨오던 차에 다행히 현재 左水使(麗水海軍基地司令官) 爾重 君이 南方에 駐鎭케 되자 榮貴한 차림으로 故鄉에 돌아와 宗親大會를 열고 말하되 「宗族으로 없지 못할 것은 族譜이다. 우리 趙氏의 族譜가 없음은 우리들의 責任인바 이제 내가 다행히 王恩을 받아 이쪽 海軍基地에 와 있음을 기회 삼아 譜牒을 해보려하니 僉位는 찬성해 주시기 바라오.」 하므로 모두들 크게 찬성했다. 어시호 宗黨의 同志들이 돌아다니며 四方宗親께 説諭한 結果 한 달도 못되어 各派의 世系文單이 모두 수집되었다. 不肖가 宗親 두어 사람과 같이 이 役事를 主張하여 昭穆(祖子孫의 位置)의 序次를 定해 編成하니 譜事가 이루어졌다. 海軍基地에서 그 봉급 가운데서 덜어내서 도와줌으로 드디어 刊印해 내고 보니 모두 若干卷이었다. 아! 派流는 源泉에서 나누어지고 枝葉은 株榦에서 나누어져서 千派萬枝의 그 수가 億萬으로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古人의 말에 「맨 처음은 한 사람의 몸이 나누어져 兄과 弟가 되고 맨 처음 兄弟의 몸이 또 여러 번 나누어져 내려오면서 멀어지면 其終也는 서로가 길가는 사람을 보듯이 된다.」라고 한 것이 格言이로다. 宗族으로서 族譜가 없으면 어떻게 本源을 미루어 알 수 있으며 宗族으로서 族譜가 없으면 어떻게 株榦을 찾을 수 있으랴. 祖宗을 尊敬追慕함도 族譜가 아니면 아니 되고 宗族끼리 敦睦하는 것도 族譜가 아니면 될 수 없는 것이니 이 族譜의 일을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 허! 우리 宗族으로 이 보첩을 보면 孝悌할 마음이 저절로 솟아 날것이오. 뒷세상의 子孫이 이를 계승하여 族譜하는 사람도 거의 이번 族譜에 느낀 바 있으리라고 본다. 後孫 維元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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